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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나’라는 착각>을 읽고

by jview_ 2025. 2. 8.

그레고리 번스 지음

이해하기 매우 어려웠던 책이고 건너뛴 부분도 많다.
책 내용이 기억이 안 날 때 다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동안은 ‘내가 먹는 것이 내가 된다’는 구절을 머릿속에 새기며 좋은 책들을 많이 읽어야겠다.




1장 우리는 시뮬레이션이다

우리 대부분은 머릿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실제 목소리로 생각하고 거울 속의 얼굴이 사실 그대로의 내 모습인 줄 알고 살아간다.
이처럼 우리 각자는 우리 머리속에서만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_ 자아의 오인 misperception

인간은 누구나 기억 속에 빈 곳이 있다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내부적, 외부적 근원을 사용하여 이를 메우려 한다.
이런 기억 메꾸기를 작화증이라고 부른다.
기억의 정확도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정확한 기억들은 교정되기 보다는 계속 왜곡되어 우리 뇌 깊이 되새겨졌다.
우리 삶의 중요 사건에 대한 가장 생생한 기억들조차 높은 정도의 작화증을 겪는다.
_ 과거의 자아

시뮬레이션은 오직 입력값에 따라 설정된다.
그리고 그 입력값이 당신의 기억이라면, 그리고 기억 그 자체에 결함이 있다면, 미래의 자아 또한 허구이다.
_ 미래의 자아

판단 기준이 되는 원형은 ‘최초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의 기억이 가장 중요하고, 영유아 시기가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2장 최초의 기억들

유년기의 이야기는 자아의 형성에 매우 중요해서 사람이 평생에 걸쳐 말하게 되는 이야기의 토대가 된다.
다가오는 사건의 중요성은 그 사건의 객관적인 진실이 아니라 사건이 진행 중인 서사에 잘 들어맞느냐에 의해 평가된다.
그리고 만일 벌어지는 사건이 진행 중인 서사에 들어맞지 않는다면?
다음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이야기를 바꾸거나, 사건을 포기하거나.

2세부터는 6개월 전의 일을 기억할 수 있다.
그러면서 과거의 자아와 현재의 자아를 동일선상에 놓기 시작한다.
12살까지도 2.5세때의 ‘초창기’경험을 기억할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잊혀진다.
초창기의 기억에서의 초창기가 이르면 이를수록 사회성 발달이 잘 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3장 뇌는 불완전한 편집자

인간은 자신의 기억이 실제 일어난 일의 '정확한 기록' 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억은 여러 조각의 묶음이며 그 빈 구멍은 임의로 메워진다.
일종의 셀룰로이드 필름의 개별 프레임처럼 순간 촬영사진을 찍어 기억하는 것이다. (스키마 schema)
이들 촬영 사진이 기억 창고에서 소환될 때, 뇌는 편집자로서 사진들의 빈 곳을 꿰매어 균일해 보이는 서사를 만들어 낸다.
서사가 모습을 드러내어 과거의 자아가 함께 연결되는 것은 이러한 편집 과정에서 발생한다.
안타깝게도, 뇌는 불완전한 편집자이다.
실제 사건을 재구성하기 위해 뇌는 모형 즉, 사진을 나열하는 일종의 스토리보드가 있어야 한다.
지난 장에서 우리가 어렸을 때 들은 이야기가 이러한 스토리보드의 기본 뼈대를 형성한다고 얘기했다.

즉, 기억도 확증편향된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난 너무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 내 뇌의 편집 과정이 기가 막히게 섬세했던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근데 스토리보드의 기본 프레임이 암흑 같은 검은색인 채로 이야기를 계속 쓰고 있었던 것이다.
빈틈 없이 모든 걸 메꾸려고 하고, 프레임과 프레임을 연결하는 감각이 예민한 것이다.


내가 친구의 카톡을 받고 소름이 돋았던 건 친구에게 긍정적인 대답이 왔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 친구는 나에게 ‘왜 연락을 먼저 안 했냐, 왜 네가 보자고 해놓고 이제 연락하냐, 넌 항상 그렇다, 그래서 저번 답장도 딱딱하게 했다’ 라고 얘기한 적이 없다.
나는 스스로 내 이미지를 깎아내려놨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만든 그 ‘과거의 자아’를 ‘현재의 자아’, 쉽게 말해 ‘나’라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난 사실 그 친구를 자주 보기 싫고, 그 친구가 보자고 할 때만 보고 싶고, 가끔 심심풀이 정도로 보고 싶어서 내가 먼저 연락을 안 하는 게 맞아서, 그래서 친구가 서운해 하려나? 라고 생각을 했고
=> ‘친구를 서운하게 만든 나’라고 이야기를 바꾸게 된다.
이 과정은 친구에게 답장이 오기 전까지 몰랐고, 심지어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것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순간순간 계속 헷갈린다.
‘아니야.. 분명히 나한테 서운해 해야하는데..?’ ‘인터넷에서 나랑 비슷한 사람을 친구로 둔 사람이 올린 글을 봤을 땐 분명히 내가 이상한 사람이고 친해지기 싫은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래야 그게 ‘’인데..?’

이미 서사를 만들어 놨고 이 기억은 부정적인 기억이기 때문에 머릿속에 맴도는 순간, 과거에 이와 유사하게 있었던 내 서사 속 데미지가 컸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한다.
다양했던 기억 속 장면들이 모두 떠오르며
‘그래서 그때 내가 그 그룹에 적응을 못했나?’ -> 적응을 못 했던 이유에 대한 다양한 환경과 시기의 변수들이 존재한다. 실제로 내가 적응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인지하지 못할 뿐더러, 이 생각은 나만의 세계 속 생각이다.
‘그래서 A가 나에게 연락이 없는걸까?’ -> 알 수 없다. ‘내가 만든 이유’로 A가 나를 불편해 할 확률,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을 확률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 B가 나한테 당황했었나?’ -> 부정확한 기억들은 왜곡되어 기억된다. B가 당황해했다는 것도 나의 기억 속 장면이고, 만약 당황했다면 적어도 ‘내가 만든 이유’로 당황했을 확률은 거의 없다.
‘난 과거에도 항상 이렇게 쩔쩔맸었지’ -> 이것 역시 과장되고 부정확한 부정적인 기억이다. 이 기억을 구성하는 개별 프레임들이 뇌의 편집 과정을 거쳐 ‘난 항상 인간관계에 쩔쩔매는 등신’이라는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낸다.
’난 고등학교 3년 내내 정말 재미있어서 웃었던 적이 없잖아. 그때 인간관계의 부정적인 기억들이 지하에 깔려있다가 성인이 되면서부터 계속 발현되는 거야‘ -> 과장된 기억과 과장된 과거와 과장된 미래다.
‘난 연락이 항상 힘들어. 카톡만 보고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하나라고 생각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야. 그래서 난 등신이야‘ -> 서사의 완벽한 결론이다. 하나의 결론은 또 다른 서사를 만들어내고 부정 루트는 부정 루트로만 이동한다.





난 22년을 이렇게 살아왔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현재의 자아’가 행복할 수 있을까?
스키마를 어디서 진행할건지, 그 스키마들을 어떻게 엮을 건지를 조심스럽게 고쳐나가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5장 자아를 찾아서

지금까지 감정에 대해 다양한 이론을 소개했다. 어떤 관점에서 보든 감정은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의 중심이며 우리가 누구라고 생각하는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건의 연속이 우리가 머릿속에서 구성되는 이야기라면, 감정은 동반되는 사운드트랙이다.

영어를 예로 들면
'I am happy[나는 행복하다]'
‘I feel happy[나는 행복을 느껴]'
뜻과 느낌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당신이 I am~이라고 말하는 순간, 당신이 곧 감정이 된다.
그리고 적어도 백 가지의 다른 감정들이 있으므로, 백 가지의 다른 버전의 당신이 있을 수 있다.

다음번에 화나거나 기분이 상할 때, I am angry[나 화났어]라고 말하는 대신, I feel angry[나는 화를 느껴]라고 말해보라.
분노가 분산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신의 내부 상태에 대한 보다 중립적인 평가이다.
이런 문장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순수한 지각적인 요소로 분리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불안에 취약하다면, 이 방법이 종종 기적을 선물 할 수 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면, I am anxious[나는 불안해]라고 결론 내리는 대신, 마치 의사가 환자의 몸을 진찰하는 것처럼 그 감각을 느껴라.
그리고 그 상태를 좋게 만드는 것 과 나쁘게 만드는 것들에 주목하라.
그것은 배고픔과 같은 느낌 인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인가?
이 기법을 쓰려면 자아를 몸에서 분리하거나 떼어놓아야 한다.
자신이 몸 위에 떠서 아래를 내려다본다고 상상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저자는 리코르의 설명이 타당하다고 본다.
여러 서사가 중력에 의해 하나의 중심인 자아로 몰리는 것이 아니라, 포워드모델(고무손과 내가 한 몸이라고 인식)처럼 자아가 확장하거나 수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내 생각에는 하나고정된 자아라는 존재자체가 없다는 것 같다.
뭔가 나는 ‘하나의 실체’, ‘고정된 나’를 찾고 싶어했는데, 없는 걸 찾아다녔던 것이다…
하지만 그 수많은 버전들(서사들)은 모두 진짜다.


The Dress라고 알려진 인터넷 밈.
드레스가 보는 사람에 따라 검정색과 파란색, 또는 흰색과 금색의 드레스로 바뀐다.
이는 개개인의 조명 조건에 대한 사전 가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조명 조건을 암시하도록 사진의 배경색을 바꾼 경우, 드레스의 색깔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7장 내가 믿는 이야기가 나를 만든다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면 뇌는 그 사건들을 연결해 서사를 구성한다.
이때 그 연결의 인과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와 같은 학자들은 손가락을 흔들며 상관관계가 인과관계와 같지 않다고 말하며, 이러한 종류의 인지 오류를 논리적 오류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말할 것이다.
두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났다고 해서 첫 번째 사건이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나는 데 반드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명백히 인과관계가 없는 사건들조차 연결해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한 가지 가능성은, 우리의 뇌가 인과성의 환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상관관계가 있다고 느껴지는 것들을 우리가 인과관계로 묶인 것으로 착각하고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한다는 뜻인 것 같다.

이미 천국에 있는 신께 기도를 드리던 수녀가 세라의 성인 신분을 위한 ‘진심 어린’ 기도로 바꿈. (상승 흐름)
루푸스 병에 걸려 차도가 없던 수녀가 완전히 회복. (상승 흐름)
세라를 위한 기도가 수녀를 낫게 했다는 인과관계를 형성했고, 즉 미신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알고가야 할 점은 이 이야기가 진짜 미신인지, 아니면 현대 의학이 발달하여 비장을 제거한 수녀의 기적적인 스토리인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뇌가 얼마나 멍청한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실제 나에게 득이 되는 미신을 부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좋은 것이다.
그 믿음이 나에게 더 큰 파워를 가져다 주고,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마치 저자의 하얀 티셔츠처럼👕






11장 믿음, 신앙, 신성한 가치들

이제는 자아의 정의를 확장해야 한다.
자아는 육체보다 훨씬 더 크다.
여기서 자아는 영혼처럼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제안하는 바는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들 그 리고 세계 자체와 가지는 모든 상호작용을 포함하지 않으면, 자아의 개념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 모델에서, '당신'은 물리적인 당신을 연결망의 중심에 두고, 그 연결들이 나무의 뿌리처럼 퍼져서 당신 주변의 모든 것에 닿는다.
그러므로, 덕 있는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서사보다 더 뛰어나다.
누구든 영웅이 추구하는 것을 따르더라도, 영웅은 자신의 여정에서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서사와 사회의 규범 사이의 주고받음을 인정한다.
물론,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해 코웃음을 치는 이들은 항상 있다.
이들은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생산적 파괴자일 수도 있지만, 반사회적이고 사회병적일 수도 있다.

그 사람에 대해 알려면 그 사람의 친구에 대해 알아야한다는 말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나라는 사람은 내 주변 사람들이고, 나 또한 주변 사람들이기 때문에 ‘독단적인 사고’라는 것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 것 같다.
그래서 무엇을 보고 듣고 누구를 만나느냐가 자아의 뿌리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같다.
결국 결론은 덕 있는 사람이 되자.
공감과 배려, 다수의 종교에서 말하는 황금률을 인생의 기본 명제로 삼자.

신기했던 건 2004년 마드리드 기차 폭탄의 테러범들은 일반인들과 특별히 다른 점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들은 테러 목적의 만남 외에 축구 동호회와 같은 사적으로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만남이 잦았고 그로 인해 ’우리‘의 생각이 ’나‘의 생각이 되는 강도가 높았던 것이다.






14장 나는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자아의 모형은 대체로 비슷하며 외부에서 우리의 뇌에 들어온 이야기로 채워진다.
너무 극단적인 생각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맞다. 우리의 개인적인 서사가 완전히 허구는 아니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사건들이 있었다.
개인적인 서사가 실제 세계의 사건들에 연결된 ‘역사 소설’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이다.






17장 진짜 원하는 나를 찾아서

지금까지 자기 망상에 대해 알아보고 다중 자아를 여행했다.
개인적인 서사는 정확하지 않으며, 기저함수에 따라 압축된 기억을 통해 형성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억은 다시 모든 경험을 왜곡한다.
또한 '베이지안 뇌'는 어떤 사건에 대한 가장 가능성 있는 해석을 만들어 내고, 빈 구멍은 허구로 채운다.
한편, 우리의 인식은 다른 사람의 생각에 따라 왜곡되고, 내 것이 라고 믿는 생각들은 대부분 다른 곳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전에 말했듯이,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이 된다. 당신이 생각 하는 자아 정체성이 자신에게 말하는 이야기에서 비롯된다면,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는 이미 내 서사의 중간에 있어서 역사를 바꿀 수 없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없어'라며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은 할 수 있다.

결국 덕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
내 주변 사람이 곧 나이고
내가 읽고 보는 것이 곧 내가 된다.
긍정적 사고가 행복한 삶을 만든다.
그리고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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